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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기고글

[서평]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인종차별이 왜 생겼고 어떻게 없앨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양선경

 

미국에서는 지난해 경찰의 흑인 살해에 대한 분노가 대중 시위로 표출됐다. 미국 인구 중 백인이 76퍼센트인데 2019년 경찰의 총에 사망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흑인과 히스패닉이었다.(출처: statista.com) 미국 비영리 단체 ‘아시아·태평양계 혐오를 멈춰라’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1년간 미국에서 아시아계 주민을 겨냥한 혐오 관련 사건은 4000건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파시스트 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불과 4년 전 파시스트 마린 르펜이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유럽의 국경 장벽을 높이는 ‘요새화된 유럽’ 정책은 수많은 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한국에서도 2018년 예멘 난민들이 입국했을 때 무슬림과 난민에 대한 온갖 인종차별적 가짜 뉴스가 횡행했다.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차별도 심각하다.

이토록 끔찍한 인종차별은 어디서 비롯하는 걸까? 인종차별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그 원인을 파헤쳐 봐야 할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인종차별과 자본주의》(차승일 옮김, 책갈피, 2020)를 읽으면 인종차별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게 아니라 체제의 필요에 의해 발명됐고, 따라서 없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또 그 희망을 현실화 할 방법도 발견할 수 있다.

 

인종차별이란 무엇인가?

피부색 등으로 ‘인종’을 나누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고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여전한 ‘인종차별’은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가르고 차별할까?

영국에서 아일랜드인들은 백인인데도 차별받았다. 이는 인종차별은 단지 피부색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저자는 인종차별이 “한 인간 집단이 타고난 속성을 이유로 차별받는 곳에 존재”하며, 흔히 피부색과 관련 있지만 피부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령 아프리카인에 대한 고정관념에는 열등한 지능, 게으름, 과도한 성행위 등이 있는데, 이러한 ‘고정관념 묶음’에 신체적 차이가 일부로서 포함돼 있다.

인종차별은 차별받는 대상이 가진 선천적 속성으로 차별을 정당화한다. 이는 종교에 따른 차별과는 다른데, 흑인은 피부색을 바꿀 수 없지만 종교를 이유로 박해당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특정 부류의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이성적 질서에 속하지 못한다는 강한 믿음을 표출한다.”

인종차별을 이렇게 설명하면 마치 단지 종교 차별인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의 무슬림 혐오도 새로운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슬림에 대한 고정관념 묶음에는 폭력성, 성차별, 광신도적 비합리성, ‘자유주의적 가치’ 위협 등이 있다. 이슬람교는 종교이지만, 무슬림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은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사실상 본성의 일부로 여겨진다. (무슬림 혐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https://wspaper.org/m/17336를 참고하시오.)

 

인종차별은 인류 역사 내내 있었나?

인종차별이 마치 오래된 인간의 본성인 양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인류 역사 속에서 매우 최근에 등장한 현상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도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나 종교에 따른 차별은 있었지만, 인종차별처럼 특정 집단을 선천적 열등함을 이유로 차별하지는 않았다. 고대의 노예제는 피부색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로마 역사에서는 적어도 황제 한 명을 포함해 많은 주요 인물이 흑인이었고, 그 어떤 문헌에도 피부색이 굳이 언급돼 있지 않다. ‘인종’이라는 개념은 인류 역사에서 특정 시기인 자본주의에 들어서 발명됐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 태동기인 17~18세기, 자본주의 초기에 어마어마한 이윤을 벌어다 준 노예 무역과 함께 등장했다. 지배자들은 광대한 토지에서의 농업 생산을 위해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을 노예로 부려야 했다. 그래서 흑인 노예와 백인 부자유 계약 노동자가 동원됐다.

17세기 중반까지 이들은 흔히 섞여 일했고 같은 숙소를 썼으며 서로가 같은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이 단결해 농장주에 맞서는 것을 보고 경악한 지배자들은 이들을 ‘인종’별로 분리해 차별적 조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흑인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됐다. 인종차별이 노예제를 낳은 것이 아니라, 하층민들의 단결을 막고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차별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에도 노예제가 있었는데, 자본주의 노예제는 왜 이를 정당화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했을까?

자본주의와 고대, 중세 사회의 차이점 중 하나는 신분제가 폐지됐다는 것이다. 신분제 하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는 관념이 당연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내세운 ‘자유, 평등, 우애’가 모든 인간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 부르주아지들이 흑인 노예에게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었다. 이들에게는 흑인은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논리가 필요했다.

이렇게 노예 무역에서 탄생한 인종차별은 이후에도 지배자들에게 유용했다. 식민지 팽창의 시기에 서구 열강은 자신들의 지배가 열등한 ‘인종’을 계몽하기 위한 ‘백인의 책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노예제도, 식민 제국도 없는데 인종차별이 존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17세기에 인종차별이 발명될 때와 마찬가지로, 인종차별 사상이 지배자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을 분열시키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아일랜드인 노동자를 향한 영국인 노동자의 적대가 “자본가계급이 권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며 “자본가계급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썼다.

자본주의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이 만들어내는 이윤으로 굴러가고, 한 줌의 자본가들은 서로 더 많은 이윤을 생산하려고 경쟁한다. 그런데 만약 노동계급이 단결해 자본가들에 맞서 싸우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자본가들은 어떻게든 이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싸우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분열의 수단이 바로 차별이다. 여성·성소수자·이주민 ·인종 차별 등 모든 차별이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에 들어맞는다.

물론 차별은 계급을 가로질러 작용하기 때문에 지배자들 중 일부도 차별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돈과 권력으로 어느 정도 차별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차별을 지속시키는 계급사회의 구조에 도전할 이해관계가 없다. 흑인이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고 해도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반면 노동계급에게는 어떠한 차별도 이롭지 않다. 노동계급이 조건을 개선하려면 착취자들에 맞선 단결이 중요하다. 백인 노동자가 인종차별로 이득을 얻는다는 일각의 주장이 틀린 이유다. 현상만 봤을 때는 백인 노동자가 임금을 더 받으니 이득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학자 앨 시맨스키는 “인종에 따른 차별이 심할수록 백인의 소득은 줄어든다”는 점을 밝혔다. 따라서 “인종차별은 백인 노동자에게 경제적으로 불리하다. 인종차별이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의 단결을 해쳐서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백인 노동자가 인종차별 사상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자본가들이 노동자 간 분열을 키우려 애쓰기 때문이다. 캘리니코스의 지적대로 “인종차별에서 백인 노동자가 얻는 것이라고는 우월한 인종에 속한다는 가상의 위안뿐”이다.

 

차별을 뿌리 뽑으려면

캘리니코스는 이런 “가상의 위안”을 진정한 위안으로 바꾸려면 계급투쟁이 성장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계급투쟁은 노동자들이 차이를 넘어 단결하도록 하는 압력을 만들고,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조건이 개선되고 자신감이 성장하면 인종차별이 먹혀들 여지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중적 노동자 조직이 단결을 추구하며 급성장할 때면 노동자들이 인종을 뛰어넘어 결집했다. 이렇게 계급투쟁은 백인 노동자가 사용자에 맞서 흑인 노동자와 단결하게 하고 인종차별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반대로 스스로의 투쟁으로 조건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대안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사이에서 인종차별도 스며들기 쉽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지배계급이나 파시스트들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주민이나 무슬림 탓으로 돌리며 인종차별을 더욱 이용하려 한다. 이럴 때 ‘문제는 사회를 이렇게 운영하는 지배자들이고 그들이 부추기는 인종차별에 함께 맞서자’ 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세력이 없다면 일부는 인종차별적 선동에 귀를 기울이게 될 수 있다.

지배자들이 끊임없이 퍼뜨리는 인종차별 선동에 맞서 연대와 단결을 이루는 일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이 노동계급에게 왜 해로운지, 노동계급이 고통받는 진정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주장하고 설득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이유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청년·학생들에게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인종차별의 뿌리부터 분석해내는 《인종차별과 자본주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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