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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청년·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청년학생 기고글

[처음 만나는 고전] 《주택문제에 대하여》
‘지옥고’는 왜 이토록 해결되지 않을까?

임재경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위기로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지만, 주택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패 문제는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채 갖기 어려운 노동자나, 지하방·옥탑방·고시원, 통칭 ‘지옥고’를 전전하는 청년·학생들에게 큰 좌절과 박탈감, 환멸과 분노를 불렀다.

출구가 없어 보이는 주택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엥겔스가 쓴 《주택문제에 대하여》는 150년 전에 쓰여졌음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해 준다.

엥겔스가 이 책을 썼던 시대는 대공업이 성장해 도시가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주택난이 심화하던 때였다.

“오늘날의 주택난은 인구가 대도시에 갑자기 몰려든 결과, 원래 열악했던 노동자들의 주택조건이 더 악화된 것을 의미한다. 집세가 엄청나게 오르고, 거주자의 밀집도가 더 커지고,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거처할 곳조차 없게 된 상태 말이다.”

국토의 12퍼센트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치솟는 집값과 경제 위기 고통전가로 노동자들이 시름하는 현대 한국의 모습은 엥겔스가 살던 시대와 닮아 있다.

당시 주택난은 노동계급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중간계급(소상공인, 농민 또는 지식인)도 주택난을 겪었고, 대자본가들도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전염병이나 사회적 불만 때문에라도 주택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그래서 중간계급과 자본가계급도 주택난을 해결하려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엥겔스는 이 책에서 이런 ‘대안’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주택 문제를 바라보면서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와 주택난, 불가분의 관계

프루동주의자인 뮐베르그는 주택시장에서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가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와 같다고 봤고, 집세를 폐지하고, 노동자들이 주택을 할부로 소유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프루동주의는 산업자본주의 이전으로 돌아가 소생산자들의 연합체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지향했는데 이는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던 대규모 기계제 공업을 포기하고 소규모 가내 수공업 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을 뜻했다. 박애주의적 자본가 에밀 작스도 노동자들이 ‘노동자 자조’로 돈을 모아 주택을 구입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주택을 소유하게 되면 주택 문제가 해결되고, 자본주의의 온갖 폐단이 극복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엥겔스는 주택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 문제로 봤다.

자본주의는 고도화된 경쟁적 상품생산 체제이고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사회는 불균등하게 발전한다. 일자리를 찾아 거대한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 노동계급이 형성된다.

노동자들은 팔 수 있는 유일한 상품, 즉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노동력은 다른 상품들과는 달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자본가들은 이에 대한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배를 불린다. 이것이 이윤의 원천이다.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 노동계급을 양육하는 데 필요한 양으로 한정된다.(마르크스주의는 생산과정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착복을 ‘착취’라고 부른다.) 설령 어떤 노동자가 주택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황과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나앉게 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과 주거 환경을 강요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선 “돼지우리같이 불결한 집마저도 빌리려는 사람이 항상 나타나며, 집주인이 자본가로서 자기의 소유 가옥에서 최고의 집세를 무자비하게 짜낼 권리와 경쟁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또한 이윤 창출을 위해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의 속성 탓에 주택도 투기의 대상이 된다. 엥겔스가 살던 시기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건축업이 비싼 주택을 훨씬 더 유리한 투기대상으로 보고 노동자들의 주택은 오직 예외적으로만 건축[한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이 지적에 꼭 들어맞는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퍼센트가 넘는다(국토교통부). 주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소수 부유층의 주택 투기가 진정한 문제인 것이다. 최근의 LH 사태는 정부와 공기업 고위 관료들이 이런 문제의 일부였음을 보여 준다. 부동산 시장을 투기 도박판으로 만들어 놓고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이득을 취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엥겔스는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에서 변혁하지 않고 주택 문제만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택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만,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폐지함으로써만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오늘날의 대도시를 보존하는 조건 하에서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친시장적

엥겔스는 당시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썼다. “모든 자유주의 정부의 원칙은 오직 극도의 필요성에 못 이겨서만 사회적 개혁 법안을 제출하며 이미 존재하는 법령들도 전혀 집행하지 않는 것 … 최상의 경우에도 국가는 관례로 된 표면적 미봉책이 어디서나 균일하게 실행되도록 배려할 뿐이다.”(강조는 엥겔스) 국가 개입에 기댈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 지적은 문재인 정부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당면한 서민의 주택 문제를 완화하려면 시장의 이윤 논리가 아니라 값싸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대거 확충하고, 종부세를 올리는 등 강력한 규제가 도입돼야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정반대다. 문재인 정부는 친시장적 기조 속에 건축업자와 토지 소유자, 투기꾼에게만 이득이 될 민간 공급 확대나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해 왔다. 이런 정책들은 미봉책도 못 되고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들이다. 노동계급이 만만치 않게 투쟁해 커다란 압력을 만들었을 때 국가가 서민의 주택 문제 해결에 나서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 투쟁을 통해 얻은 성과들은 이런 조처가 더 절실히 필요한 경제 위기 시기에 오히려 더 위협받을 수 있다. 국가는 자국 자본과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기존의 복지들을 삭감하고, 알량한 개혁도 양보하지 않으려 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자본주의 체제의 내재적 결함 때문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 위기는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해 길거리에 나앉게 만든다.

결국 “주택난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오직 하나의 수단이 있을 뿐이다.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전반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 대도시에는 합리적으로 이용할 경우 현실의 ‘주택난’을 모두 즉각 시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주택용 건물이 있다. 그런 일은 물론 오늘날의 소유자들로부터 몰수를 통해서만, 즉 숙소가 없는 사람들이나 이제까지의 주택에 과도하게 밀집해 있는 노동자들을 그들의 가옥에 수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는데, 공공의 복지가 필요로 하는 그러한 조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 권력을 전취하자마자, 마치 오늘날의 국가에 의한 다른 몰수와 수용이 그렇듯이 쉽게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사회를 만드는 혁명의 과정에서 주택난의 조건은 무너지고, 해결될 수 있다. 엥겔스의 《주택문제에 대하여》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주택난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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