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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책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트랜스젠더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훌륭한 길잡이

이재혁(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변희수 하사와 김기홍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 친구나 동료에게 안부를 묻기도 했다. 변희수 하사 추모행동에는 공지 하루 만에 수백 명이 참가했다.

반면에 두 사람이 죽기 직전 서울시장 주요 후보들은 퀴어퍼레이드를 서울광장에서 몰아내고 싶은 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는 뻔뻔스럽게도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 대해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의 입장을 낼 것은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끔찍한 차별의 현실

트랜스젠더는 일상에서 온갖 차별과 혐오, 편견에 시달린다. 은행 업무, 술과 담배 구입, 투표, 공공 서류 발급, 휴대폰 계약 등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일에서 트랜스젠더는 모욕적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툭하면 “본인이 맞냐”는 물음을 들어야 한다. 시선이 따가워 화장실 사용도 쉽지 않다. 적잖은 트랜스젠더가 배뇨 장애와 배설 장애를 겪는 이유다.

트랜스젠더는 일자리를 구할 때도 어려움을 겪는다. 구직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 성별 정보와 외양이 다른 것을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많은 트랜스젠더가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가까스로 취업을 해도 아웃팅이나 해고 협박에 시달리며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심각한 괴롭힘, 혐오 범죄, 학대, 따돌림 등에 시달리는 트랜스젠더들도 많다. 그래서 해마다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는 혐오 범죄로 목숨을 잃은 트랜스젠더들을 기리고 있다.

까다롭고 모욕적인 법적 성별 정정 절차와 막대한 성전환 비용도 트랜스젠더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대법원 예규는 성별 정정 조건으로 의료적 요건(정신과 진단, 생식 능력 제거, 성전환 수술), 미성년자 자녀 없음, 부모 동의서 등을 충족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요건을 갖추고 정정 결정을 받기까지 몇 년씩 걸리는 것은 예삿일이다. 의료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수백만~수천만 원에 이르는 성전환 비용도 마련해야 한다. 까다로운 법적 절차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법적 성별 정정을 포기하는 트랜스젠더도 많다.

이처럼 끔찍한 차별의 현실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산다. 우울증을 겪는 트랜스젠더의 비율은 다른 차별받는 집단들에 비해서도 유난히 높다. 트랜스젠더의 자살률도 심각하게 높다.

주변에서 트랜스젠더를 쉽게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트랜스젠더가 소수여서가 아니다. 끔찍한 차별과 혐오 때문에 스스로를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 트랜스젠더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자는 날이다. 트랜스젠더의 현실이 이만큼이라도 가시화될 수 있었던 것은 변희수 하사와 김기홍 씨처럼 용기 있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며 차별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 덕분이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책갈피)의 주 저자 로라 마일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녀는 영국 최초로 노동조합 전국집행위원으로 선출된 트랜스젠더이자 혁명적 사회주의자다. 마일스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트랜스젠더 차별과 대안을 설명한다. 즉, 트랜스젠더 차별의 역사적·물질적 근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그것을 없애려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트랜스젠더 차별의 근원

트랜스젠더는 유난히 천대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차별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타고난 성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류 역사 내내 존재했다. 여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용인되고 존경을 받기도 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성별 전환만이 아니라 오늘날 성별 이분법을 뛰어넘는 다양한 성별도 인정됐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혹은 ‘반은 여성이고 반은 남성’ 같은 다양한 성별을 인정하는 용어(‘두 영혼의 사람’)가 있었다. 130곳이 넘는 부족에 이런 용어가 있었는데, 다양한 젠더의 개인은 상담자, 선생님, 치료사 등 존경받는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 트랜스젠더 차별도 생겨났다. 계급 사회의 등장과 함께 지배계급의 재산을 물려주는 제도로서 남성 우위의 가족이 생겨났고, 대다수 여성들은 출산과 양육, 가사에 매여 살도록 집안으로 떠밀어졌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별 고정관념과 이분법적 성별 규범도 생겨났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하락했고, 성 역할 구분이 엄격해졌으며, 이를 흐리는 행위들이 비난받기 시작했다.(자세한 설명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참고하기를 추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별은 강화됐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생산할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고 그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고 노동력 재생산의 책임을 개별 가정, 특히 여성에게 떠넘겼다. 남녀 부부와 자녀들로 이뤄진 핵가족 형태가 이런 목적에 잘 부합하므로 이 제도를 안정화하려고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성별 규범이 강화됐고, 이 과정에서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젠더 혐오도 생겨났다.

즉 트랜스젠더 차별의 근원은 여성 차별과 마찬가지로 계급 사회이고, 자본주의 사회 체제에 깊숙이 박혀 있다. 차별의 근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차별을 없애기 위해 무엇에 맞서, 누구와 함께 싸울지를 아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선 저항

트랜스젠더 차별과 혐오에 맞선 저항도 성장하고 있다.

위대한 성·젠더 해방 투쟁이었던 1969년 뉴욕의 스톤월 항쟁에서도 트랜스젠더는 중요한 일부였다. 스톤월 항쟁은 세계를 뒤흔들었던 ‘1968반란’의 물결 속에서 벌어졌다. 당시 많은 동성애 활동가와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 차별에 맞서 차별을 양산하는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젊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활동가의 상당수는 스스로를 확고한 혁명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구에서 1970년대 들어 지배자들이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시작하면서 노동계급 투쟁이 약화되자 차별에 맞선 투쟁도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 운동 주변으로 밀려나게 됐다. “트랜스젠더의 요구는 과도하고 동성애자의 권리 쟁취에 방해가 된다는 견해가 빠르게 퍼졌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단결하지 않고 분열하자 운동은 약해지고 권리는 후퇴했다.

한국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가 대립한다고 보며 트랜스젠더 배척적인 태도를 취해 온 상황에서, 이런 역사는 꼭 곱씹어 볼 만하다.

마일스는 트랜스젠더 저항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러시아 혁명, 독일·미국·영국의 초창기 동성애자 해방운동, 1960년대와 스톤월 항쟁 이후 등 역사적 경험은 성소수자가 차별받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노동계급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일원으로 함께 싸울 때 성소수자의 권리가 가장 크게 향상됐음을 보여 준다.” 이 책에 실린 마이클 댄스의 글 ‘영국 교원노조가 트랜스젠더 권리를 옹호하다’는 트랜스젠더 운동의 방향에 대한 힌트를 준다.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둘러싼 논쟁

이 책의 1부가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을 개괄적으로 설명한다면, 2부는 트랜스젠더와 권리를 둘러싼 운동 안팎의 잘못된 주장을 다루면서 정면으로 반박하고,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단호히 옹호한다. 1부가 이론 수업이라면 2부는 실전 문제 해설 같은 느낌이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여성해방이 상관없는 것인지, 트랜스젠더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가 대립하는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성별 자기 결정이 중요한지, 성별 정체성은 단지 ‘느낌’일 뿐인지 등등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의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와 그 수혜자인 지배계급”인 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해방의 전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우리는 트랜스젠더 차별에 반대하고, 차별에 항의하는 저항을 지지하면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공동의 적인 자본주의 체제와 권력자들에 맞서서도 함께 싸워야 한다.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옹호하고, 트랜스젠더가 3월 31일 하루만이 아니라 365일 내내 가시화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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