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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고전] 파리코뮌 150주년에 보는 《프랑스 내전》
최초의 노동자 국가는 어떤 모습이었나

김지은(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약 230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세계경제의 심각한 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빚을 지고, 집에서 쫓겨나고 있다. 기후 위기 탓에 미국, 호주에서는 대형 산불이 일어났고, 한국에서도 기록적인 폭우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땅히 국가가 나서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를 바란다. 국가를 활용해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정치 조류도 있다.

그러나 대중의 바람과는 달리 각국 지배자들은 안전, 생명이 아니라 기업들의 이윤에 우선순위를 둔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안전 조처들도 경제 활성화에 밀려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은 국가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카를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은 이런 물음에 대한 역사적 통찰을 제공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그대로 장악해서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없”고 기존 국가를 분쇄해야 한다고 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대표 저서 《공산당 선언》 서문에도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1871년 파리 코뮌에서 이런 교훈을 이끌어 냈다.

 

파리 코뮌이 등장하기까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독일 제국 건설을 밀어붙이며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년)에서 오스트리아를 제압한 데 이어 프랑스를 제압하려 했다. 당시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자는 1848년 프랑스 혁명 이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3세였다. 그는 비스마르크가 ‘영토 보상’ 약속을 배신해 국내의 정치적 위기가 심해지자 이를 극복하고자 전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이센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 결과 프랑스군은 전투에서 참패했고, 루이 보나파르트가 포로로 잡혔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제정 통치에 넌덜머리가 난 파리 인민들(대부분 노동자였다)은 1870년 9월 4일 혁명을 일으켰고 공화국이 선포됐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것은 부패한 공화파였다. 이들은 전(前) 입법원 파리 대의원이었다는 명분으로 반동적 인물 아돌프 티에르를 수반으로 내세워 ‘국민 방위 정부’를 자처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계속되는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파리를 지키기 위해 파리 인민들은 이를 감수하면서도 스스로 무장한 채 정부가 배신하지 않을까 견제했다.

티에르는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부르주아지 자신의 계급적 부패의 가장 완성된 정신적 표현”이자 “관직에서 밀려날 때면 언제나 벌써 혁명을 부추기고, 국가의 고삐를 쥐자마자 혁명을 피로 진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자”였다. 그는 입으로는 혁명의 편이라고 하면서 실제 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취급해 탄압해 온 자였다.

그는 1830년 이전까지 공화주의자들과 연계를 맺다가 배신하고서 그 대가로 루이 필립 국왕 시기에 내무장관을 지냈다. 이때 노동자 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출판과 결사의 권리를 탄압하는 악명 높은 “9월 법”을 공포했다. 1848년 프랑스 혁명으로 등장한 제2공화국 기간 동안에는 정통 왕조파, 오를레앙파, 보나파르트파 등 군주주의적 집단이 만든 반동적인 대부르주아 정당인 ‘질서파’의 지도적 인물이었다.

박쥐 같은 티에르는 ‘국민 방위 정부’의 수반이 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이 정부가 한 첫 번째 일은, 티에르로 하여금 유럽의 모든 궁정들을 돌아다니면서 공화국과 국왕을 교환하겠다는 제안으로 중재를 구걸하는 것이었다.”

‘국민 방위 정부’는 애초에 공화국이 선포된 날부터 파리를 지킬 의지가 없었고, 프로이센에 투항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마침내 1871년 1월 28일 정부는 프로이센에 항복하며 강화 조약을 체결했다.

파리 인민들은 이에 거세게 반발했다. 티에르는 반발을 누르고 전쟁배상금을 인민들에게 떠넘기기 위해 스스로 무장한 파리 인민들의 국민방위대를 무장해제시키려 했다. 티에르는 국민방위대의 대포를 탈취하려다 실패하자 베르사유로 도망쳤고 “영광스러운 3월 18일의 노동자 혁명은 파리를 확실히 장악”하며 파리 코뮌이 등장했다.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다

파리 코뮌은 기존 국가의 오물을 없애고, 새로운 선구적 조처들을 시행했다. 이것은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과 비교해 봐도 놀랍도록 민주적인 조처들이었다.

첫째로 기존 국가가 억압의 무기로 사용해 온 상비군이 폐지됐고, 무장한 인민들이 대신 파리를 지켰다.

또한 중앙 정부의 도구이던 경찰을 포함해 모든 행정부의 관리들이 언제든지 책임을 지고 해임될 수 있는 코뮌의 관리로 대체됐다. 인민들이 대표를 직접 선출하고, 견제할 수 있게끔 했다.

코뮌은 모든 관리들이 노동자와 같은 임금을 받도록 해 출세주의자가 진입하는 것을 방지했다. 오늘날 국회의원, 장관, 판사, 경찰 간부 등 국가 고위 관료들이 받는 막대한 ‘임금’을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조처다.

코뮌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로부터 교회의 분리, 종교적 목적을 위한 일체의 국가 지출의 폐지, 모든 교회 재산의 국유 재산으로의 전환을 실시했다. 종교적 상징, 성상, 교리, 기도와 같은 “개인의 양심에 관계되는 모든 것”이 학교에서 추방됐다.

코뮌은 주택 임대료를 면제하고 전당포에 저당잡힌 물건들의 판매를 일체 중지시켰다.

코뮌은 공장주들이 폐쇄한 공장들의 통계표를 작성하고, 노동자들이 협동조합들로 결합해서 자신의 힘으로 공장을 경영할 계획을 작성하도록 했다. 제빵공의 야간 작업을 폐지하고 제2제정 이후 경찰이 임명한 인물들이 독점적으로 운영해 온 직업 소개소 폐지를 명령하는 등 노동자들을 위한 조처를 실행했다.

코뮌은 파리 방돔광장에 세워져 있던 전승 기념물을 넘어뜨렸다. 이 기념물은 나폴레옹이 전쟁을 하며 빼앗은 대포 1250개를 녹여서 만든 것으로 군국주의와 국수주의의 상징이었다. 코뮌이 이를 무너뜨린 것은 지배자들이 강요하는 민족 간 전쟁에 반대하고 국제주의적으로 평화를 지향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조처였다.

억눌리고 차별받아 온 여성들이 코뮌에서 적극 활동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진정한 파리의 여성들이 표면에 떠올랐다. 그들은 고대의 여성들처럼 영웅적이고 고결하고 헌신적이었다.”

이처럼 “코뮌은 본질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정부였으며, 전유 계급에 대한 생산 계급의 투쟁의 산물이었으며, 노동의 경제적 해방이 완성될 수 있는, 마침내 발견된 정치 형태였다.” 또한 “노동자 계급이 사회적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인정된 최초의 혁명이었다.”


티에르의 반동

코뮌은 티에르 정부의 끈질기고 잔혹한 공격에 시달렸다. 베르사유로 옮겨간 티에르 정부는 곧바로 파리 코뮌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국민적 의무와 계급적 이해관계 사이의 분열에서 국민 방위 정부는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국민 방위 정부는 국민 배신 정부로 탈바꿈”했다.

티에르 정부는 차차 힘을 회복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파리 인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이는 기존 부르주아 국가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투쟁에 얼마나 적대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부르주아 질서의 문명과 정의는, 이 질서의 노예들이 자신들의 주인에게 반항할 때마다 참으로 격렬한 빛을 내며 등장한다.”

반면에 파리 코뮌은 ‘아쉽게도’ 진정한 인간애를 펼치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몰두하느라, 티에르 정부를 전복할 기회를 놓치고 티에르가 파리 공격을 위해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정적 실수는 코뮌이 프랑스은행을 접수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었다. 엥겔스는 서설에서 “코뮌의 수중에 있는 은행, 이것이야말로 만 명의 인질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렇게 [프랑스은행을 접수] 하였더라면 프랑스의 부르주아지 전체는 코뮌과의 강화에 관심을 갖도록 베르사유 정부에 압력을 가하였을 것이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티에르는 파리를 분쇄하기 위해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에게 포로로 잡힌 군인들을 풀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비스마르크는 파리의 노동자 혁명을 분쇄하는 데 기꺼이 힘을 보탰다. 각국 지배자들이 서로 경쟁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진압하는 데서 한뜻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티에르 정부는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와 합심해 공세를 편 끝에 5월 20일 파리에 진입했고, 9일 동안 파리 인민들을 철저하게 그리고 매우 잔혹하게 학살했다. 이렇게 프랑스 내전이 끝났다.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

마르크스는 티에르 정부를 향한 분노를 드러내며 프랑스 절대 군주제 시대에 생겨난 중앙 집권적 국가 권력이 1789년 프랑스 혁명, 1830년 혁명을 거쳐 제2제정 루이 보나파르트까지 어떻게 지배계급의 도구로써 사용돼 왔는지를 분석했다.

마르크스는 1830년 혁명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한 부르주아 공화주의자들이 혁명에 동참했던 피지배계급을 학살했던 것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을 꿰뚫는다.

“현대 산업의 진보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 대립을 발전시키고 확대하고 심화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그와 똑같은 정도로 국가 권력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전국적 권력이라는 성격, 사회적 노예화를 위해 조직된 공적 강제력이라는 성격, 계급 전제의 엔진이라는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계급 투쟁에서 하나의 진전 단계를 표시하는 모든 혁명 후에는 국가 권력의 순수하게 억압적인 성격이 더욱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마르크스의 평생 벗이자 이 책의 서설을 쓴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다.

“코뮌은 처음부터 곧바로 다음의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노동자 계급은 일단 지배권을 획득하면 낡은 국가 기구로는 더 이상 관리해 나갈 수 없다는 것 ⋯ 이전의 국가의 특징적 성격은 무엇이었던가? 사회는 자신의 공동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단순한 분업에 의해서 자신의 기관들을 창설하였다. 그러나 국가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이 기관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특수한 이익에 복무함으로써 사회의 종에서 사회의 주인으로 바뀌었다.”

또한 엥겔스는 독일에서 “국가에 대한 미신이 철학에서 부르주아지의 일반적 의식과 심지어 많은 노동자들의 일반적 의식으로까지 옮겨” 간 것에 문제를 느끼면서 “실제로는 국가란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억압 기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이는 민주 공화제에서도 군주제에서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사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파리 코뮌은 지배자들의 공격으로 두 달 만에 끝이 났다.

하지만 파리 코뮌은 새로운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힐끗 보여 줬다. 마르크스는 “생산자의 정치적 지배는 그들의 사회적 노예제의 영속화와 병존할 수 없”고 그러므로 “코뮌은, 계급들의 존재에 근거하는, 따라서 계급 지배의 존재에 근거하는 경제적 토대를 전복하기 위한 지렛대로서 봉사해야 했다. 일단 노동이 해방되면, 모든 사람이 노동자가 되며, 생산적 노동은 계급적 속성이기를 멈추게 된다”고 했다.

자본주의에서 유일하게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라는 착취의 사슬을 스스로 끊어내야 진정한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이 노동계급이 혁명을 거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가능하다는 점도 함께 얘기했다.

“노동자 계급은 코뮌으로부터 기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인민의 포고령에 의해 도입될 기성의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해방을 달성하고 그와 함께 현재의 사회가 자기 자신의 경제적 작용을 통해 불가항력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더욱 고차적인 형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이 오랜 투쟁을, 즉 환경과 함께 인간을 완전히 변모시키는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을 열렬히 지지했고, 코뮌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를 인수해 고쳐 쓸 수 없고, 완전히 분쇄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발전시켜 실천한 혁명가가 바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이었다. 레닌이 쓴 《국가와 혁명》은 이것의 정수를 담고 있다. 그리고 초기 러시아 혁명의 모습은 마르크스가 노동자 국가의 특징으로 언급한 것들과 비슷했다. 또한 레닌은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은 결코 저절로 이뤄지지 않고, 노동계급에 뿌리내리려 노력하는 혁명가들로 조직된 혁명 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을 발전시켰다.

150년 전 파리에 등장한 최초의 노동자 권력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가 가능하고, 노동계급이 새로운 사회를 운영할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줬다. 이런 가능성을 오늘날 현실로 만드는 데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지키고, 현실에서 실천을 통해 입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이 길에 함께 하고자 하는 청년・학생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참고한 글>

《민중의 세계사》(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책갈피) 6부 ‘뒤집힌 세계’ 중 2장, 7장 11장

 

※우리말 번역서를 원용할 때 “꼬뮌”, “띠에르” 등은 최신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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