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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기고글

[서평]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기후위기 해결과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의 교과서

오제하(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요즘 여름은 정말이지 에어컨 없이 버티기가 힘들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폭염과 산불, 홍수 등 기상이변의 광풍이 불었다. 어디 그뿐인가? 고위도 지방의 빙하가 어느 때보다도 빨리 녹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를 그 이유로 짚는다. 최근엔 “기후변화” 말고 “기후위기”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세계의 지배자들은 어느 누구도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트럼프의 역겨운 행보는 제쳐 놓자. 최근 폴란드의 석탄 도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는 지배자들의 무능과 무관심을 노골적으로 보여 주는 황당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청정 석탄”(?)을 만든다는 주최국 폴란드가 회담장에서 ‘석탄으로 만든 비누’를 떡하니 판매하며, 이 회담 자체를 코미디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석탄은 탄소 배출의 주범이다.

이런 자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는 길만이 존재하는 걸까? 이에 대해 “아니야!” 하고 답하면서, 상세하면서도 명쾌하게 길을 제시하는 책을 한 권 소개하고 싶다. 바로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조너선 닐, 2011, 책갈피)이다.

 

쉽고 친절한 기후위기 입문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하나 고르라면, 기후변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상당히 심오한 쟁점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쓰였다는 점이다.

또, 이 책은 기후위기의 진정한 대안과 대안이 아닌 것들을 날카롭게 구분해 설명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실 인류는 이미 기후위기를 극복할 과학기술을 이미 갖추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긴급한 조치들을 실행해야 한다. 지금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전면 중단하고, 청정 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 공업, 운송, 건물 등 부문에서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관한 전 세계적 걱정이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왜 기후위기는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는 걸까? 저자는 기후위기를 낳은 메커니즘이 기후위기를 해결하지도 못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바로 자본주의 체제다.

자본주의 체제는 개별 자본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분투하는 체제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경쟁 기업들을 견제하며, 자국 정부와도 서로 의존한다. 자본주의 국가들도 서로 경쟁한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기업들과 국가들은 화석연료에 엄청나게 의존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전 세계의 기업과 정부는 인류의 미래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온 힘을 집중한다. 화석연료 기업들과 그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들은 일단 기후위기의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이런 분석은 지금의 현실에 비춰볼 때 더욱 와 닿는다. 최근에는 태양광 등 청정 에너지의 발전 단가가 핵 발전 단가보다 낮아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청정 에너지는 대거 도입되지 않고 있다. 화석연료 기업들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시장은 언제 우리를 구해 준다는 걸까?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다’는 점 때문에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기후위기를 해결하자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동적인 해결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각국의 정부들이 나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미 제2차세계대전 중 각국 정부들은 배급제와 대규모의 산업 전환을 이룬 경험이 있다. 그 때는 가능했는데 지금은 왜 안 되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심지어 제2차세계대전 때의 대규모 전환이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 정부가 대전환에 나서길 촉구하는 대중운동

저자는 정부에 기후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대중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기후위기의 피해 당사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과 민중이다. 이들이 정부에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면서도 잘 나서지 못하는 것을 두고, 저자는 “희망”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전 세계의 지배자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 지배자들에 의존하는 전략의 환경운동은 유의미한 대중운동 건설을 하지 못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기후위기에 항의하며 벌어진 다양한 운동들을 소개한다. 그 운동들에서 나타난 가능성, 그 가능성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교훈을 살피며 “희망”을 제시한다. 그 결론으로 저자는 특히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과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투쟁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어떤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진정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오히려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은 곧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곧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투쟁이며, 사회 불평등에 맞서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은 가능하다, 다만 매우 급진적인 전환과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계급의 문제: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해야 할까?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딜레마 같은 명제가 있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모두가 삶의 질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탄소 배출을 극적으로 줄이려면 평범한 사람들도 소비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도심을 다니는 승용차에 세금을 크게 매기자거나 전기세를 대폭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대다수의 사람들, 특히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 것이다. 평범한 노동자와 서민 대다수의 삶의 방식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분당에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게 가능할까?

그리고 개인들의 소비에 불이익을 준다 해도, 부자들은 큰 피해가 없다. 오히려 기후위기 해결은 마치 “부자들만을 위한”, 돈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치부돼 버리기 쉽다. 즉, 보통 사람들은 이행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도덕적 훈계로 남을 것이다. 그 결과 탄소 배출도 못 줄이고, 기후위기 해결의 움직임도 전진하지 못한다.

이 책의 저자는 전혀 다르게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은 대안이 아니다” 하고 말이다. 애당초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의 책임도 없지만, 개인의 삶의 질을 희생시키는 방식은 무엇보다 탄소 감축을 위한 대중 투쟁 건설에 해롭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영역에서는 개인들도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할 것이다. 가령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승용차 이용은 줄여야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은 개인들에 대한 호소나 규제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훨씬 편안하고 효율적이도록 계획하고 투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 계획과 투자는 전 세계적 규모여야 할 것이다.

저자는 그런 점들을 섬세하게 고려하면서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희생을 지우지 않는 방법들을 당당하게 제시한다. 빈곤과 기후위기를 함께 해결할 방법들이 있다!

이 문제는 실제로 굉장히 중요한데, 지난 수십 년간 각 국가들 사이에 탄소 감축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을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경쟁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관점들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결국에는 경제성장, 즉 절대적 빈곤의 해결과 기후위기의 해결을 대립시킨다. 따라서 중국과 인도 등지에 사는 십 수억 명의 ‘가난한 사람들’과 선진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오늘날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주요 책임자들이 돼 버린다. 실질적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풍족한 생활수준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을 비판하면서, 기후위기는 곧 계급 불평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밝힌다. 중국, 인도의 지배자들은 실질적인 탄소 감축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의 지배자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중국, 인도와 선진국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모두 기후위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오히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들이다.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인류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이 책은 그 시나리오를 두 갈래로 제시한다. 첫째는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끔찍한 기후재앙이 닥치는 것이다. 이 책의 초판인 나온 지 10년이 되는 지금, 이 주장은 점점 옳은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저자는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 허리케인과 수단 ‘다르푸르’를 두고 벌어진 내전의 참상을 보여 준다. 둘 다 기후변화 때문에 일어났고,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갔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이윤을 위해 보통 사람들의 삶과 안전을 희생시키는 이 비정한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둘째는 지금 당장 탄소 감축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처를 최대한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기후위기가 급속히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순히 한 나라의 기후 정책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전 세계적 수준의 산업 전환이 필요하다. 부자들에 대한 특혜도 금지해야 한다. (스스로 투쟁해서) 정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거기서 만족할까? 수십 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공세로 사람들을 짓눌러 온 세계의 지배자들은 이 과정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정말 이런 대안들을 실현할 수 있을까? 혁명이 필요한 건 아닐까? 그런 혁명은 가능할까?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급진적인 전환은 정말 가능할까?

저자는 몇 가지 가능성과 과제를 제시한다. 저자의 대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의 끝 부분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를 읽어보길 바란다.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한 폭로, 아동문학가다운 따뜻한 시선과 위트, 냉철하면서도 쉬운 문장,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활동해 온 저자의 통찰 등이 이 책의 또 다른 장점들이라 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고 진정한 해결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책을 손에 잡고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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