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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청년학생 기고글

[서평] ≪경쟁에 반대한다≫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가장 신성한 소를 햄버거로 만들어 버리는” 명쾌한 책

석중완

 

“물고기는 물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으므로 그 존재에 대해서 생각할 줄 모른다”. 마치 물 없는 곳에서 살아본 적 없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경쟁의 바다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삶은 어릴 때부터 입시 경쟁, 입학하면 취업 경쟁, 취업하면 성과 경쟁 등 경쟁의 바닷물로 채워지며, 누군가를 이기고 승리해야 한다는 수압이 짓누른다. ‘경쟁은 인간에 내재한 본성이야’, ‘경쟁 없이도 사회가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지!’와 같이 경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들은 우리 삶에 쉬이 스며들고 재생산된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가혹한 경쟁과 분열의 심연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과도한 경쟁은 부정부패, 반칙, 폭력 등을 낳잖아’ 하는 의심을 낳고 동시에, ‘적당하고 공정한 경쟁은 바람직하고 가능한 것 아닐까?’ 하는 여지 또한 남긴다. 최근 학교, 인천공항 등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정규직화 요구에 쏟아졌던 ‘공정한 경쟁을 벗어난 떼쓰기’라는 비난도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며 이러한 분열을 부추겼지만, 제대로 된 정규직화는커녕 청년 일자리 공약에서도 뒷걸음질을 거듭하고 있다. 실업률과 취업 경쟁률이 ‘역대 최고’라는 뉴스나 ‘헬조선’과 ‘N포 세대’라는 자조적 한탄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을 정도다. 경쟁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는 구실과 경쟁 그 자체에 근본적으로 물음을 던지고 도전해야 할 필요성은 나날이 커지며 절실해지고 있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알피 콘의 저서 ≪경쟁에 반대한다≫는 처음 출간된 지 30년이 더 지났지만, 경쟁에 의구심을 품고 도전하고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깊은 영감을 주는 필독서다. 저자는 교육학뿐 아니라 심리학, 인류학, 철학 등 분야의 방대한 연구들을 근거로 경쟁 옹호 논리들을 낱낱이 반박한다. 그 덕분에 매우 실증적이며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점은 이 책의 강점이다.

 

상호 배타적인 목표 달성”

저자는 경쟁의 본질을 “상호 배타적인 목표 달성”으로 규정한다. “이는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실패해야만 내가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운명으로 묶여 있다. 두 명이나 그 이상의 개인들이 절대 모두는 달성할 수 없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경합한다.”

이러한 경쟁 과정은 사람들의 자존심과 창의성을 빼앗고 소외감, 열패감과 인간성 왜곡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책에서는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해 교사에게서 질책 받고 낙담에 빠진 보리스와, 직접 풀겠다며 자신 있게 손을 들어 문제를 해결하고 의기양양해하며 웃고 있는 페기의 사례를 소개한다. “혹시 보리스는 성장하여 페기와 같은 여자들을 만나면 경멸할지도 모르며, 그의 분노는 모든 여자들, 혹은 승자로 가득한 어떤 집단을 향해 분출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념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의 실패와 낙오는 이 작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것에 비할 바 없이 너무나 비참하고 불합리하다. 그렇기에, “정정당당한 경쟁자가 되라는 말보다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훨씬 크고” 이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벗어난 반칙과 폭력 등 부정 행위들의 배경이 된다. “이러한 행동이 한 개인의 정신적 문제라든가 인간의 냉혹함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경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가 지적하듯 “경쟁은 원래 공정할 수 없다.” ‘과도한 경쟁’이 낳은 폐단의 근본적 원인도 경쟁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폐단이란 … 그저 순수한 경쟁의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경쟁은 또 다른 경쟁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자기 영속성”을 가진다. 지배자들은 이를 끊임 없이 부추긴다.

지배자들은 경쟁의 모든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떠넘긴다. 이는 서로 연관된 두 가지 효과를 낳는데 첫째, 개인주의화와 파편화를 더욱 강화한다. 이 경향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감,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을 흐트러뜨린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거의 경쟁과 관련되어 형성된다. 경쟁은 형제자매, 친구, 이웃, 그리고 애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교실에서 호흡하고 공부하며 때로는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는 친구들이지만, 인생을 결정할 시험 점수가 발표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둘째, 경쟁이 낳은 사회적, 개인적 문제의 해답을 경쟁 구조라는 본질에서 구하기 어렵게 만든다. “기업들의 각종 불법 행위(오염물질의 불법 투기부터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대한 뇌물과 로비까지)들도 사회구조와 아무 상관 없는, 기업가 개인의 문제로 여기게끔 만들면, 그러한 범죄 행위의 원인이 되는 각종 제도들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범죄, 빈곤 등의 원인을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분노 조절, 이기심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의식을 크게 좌우하는 경쟁적 사회 구조를 바라봐야 근본적 해결책도 제시할 수 있다.

 

자기실현적 예언

이 책은 경쟁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첫째, 경쟁은 (협력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이하 인간 본성론)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 본성론의 과학성은 사회생물학 등 생물학적 결정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일부 사회생물학자들조차 이것이 비과학적이고 공상적인 추측이라고 시인했다. 경험적으로도,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던 의인들, 박근혜 퇴진이나 세월호 문제 해결 등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강의나 작업을 등지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헌신성과 희생 정신 등을 보면 인간 본성론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한 미국인 교사의 사례는 “경쟁은 학습되는 현상”이라는 주장을 잘 뒷받침한다. 그는 “낙제, 등수, 시험, 그리고 우등생 도장”이 없는 영국의 한 초등학교에 방문해 학생들에게 누가 가장 영리한지를 물었는데, “아이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 아이들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 교사는 미국으로 돌아와 “우등생을 가려내거나 등수 매기는 것을 멈춤으로써” 3주 만에 자기 학급의 학생들이 “협력의 정신과 서로 도우려는 마음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이 사례에서 보여주듯, “우리의 교육은 대부분 매우 개인주의적이며, 경쟁적인 평가 구조가 그것을 부채질한다. 종종 경쟁(개인 간이든 집단 간이든)은 교육과정 그 자체에 들어 있기도 하다.” 즉, 인간 본성론은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계속 주입시켜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도록 함으로써 실제로 경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고, 결국 그 주장이 진실이 되게 하는 … 자기 실현적 예언”인 셈이다. “반면 관용의 행동에 대해선 그것이 ‘단지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 본성론은 경쟁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의 물음과 행동은 헛수고라고 하는 보수적인 주장이다. 체제 유지에 이해관계를 가진 지배자들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활용한다.

우리가 학습이나 노동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성취하는 것과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 이 책은 인간이 협력적 학습과 노동을 매우 쉽게 배우며, 즐거움과 매력을 느낀다고 입증한 여러 연구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수준이 낮거나 중간 정도인 학생이 각각 다른 능력을 가진 학생들과 협동하여 학습하면 더 잘 배우게 되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학생들도 홀로 공부할 때보다는 성적이 좀 떨어지는 아이와 협력하여 공부할 때 더 좋은 성과를 올린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손해를 보는 일은 없었다.”

둘째는 자원이나 기회의 희소성 때문에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사회란 재화가 언제나 부족하다는 가설 위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경쟁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인분의 음식을 2명에게 분배하려면, 100개의 일자리를 1,000명에게 분배하려면 경쟁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밤에는 남의 집 창문을 깨뜨리고, 낮에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떠벌리는 유리 회사와 똑같은 원리”와 다를 바 없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일종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 지구상에는 모든 인류가 먹고도 남을 정도의 식량이 있다는 것이다. 토지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노량진 한켠에는 실업자 청년들이 넘쳐나는 동시에, 노동자들은 과로와 가혹한 노동강도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전 세계적 빈곤과 불평등의 불합리성은 굳이 통계 자료를 들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엄청난 생산력과 기술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쓰이지 않는다. 즉, 의도된 불평등인 것이다.

경쟁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자 근본 특징이다. 자본주의 이전 계급 사회에서도 경쟁은 존재했지만, 자본주의에서처럼 역동적이고 전지구적이며 통제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자본가들은 그들끼리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권력과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자 온갖 수단과 이데올로기를 동원한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맹목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자본 축적 경쟁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발전에 투자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래서 눈 부신 생산력과 기술 발전을 이뤘지만 모순적이게도,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밝혔듯, 필연적으로 경제 위기와 극심한 불평등을 낳는다.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더욱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돌이키기 힘든 환경 파괴와 저자가 “가장 극단적인 경쟁”이라고 부른 거대한 전쟁을 낳는다. 이는 경쟁의 종착역이며, 인간 사회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열쇠는 계급투쟁

≪경쟁에 반대한다≫는 저자 자신의 표현처럼, 경쟁이라는 지배자들의 “가장 신성한 소를 햄버거로 만들어 버리는” 책이다.
냉혹한 경쟁에 쓰라린 기억을 가진 사람들, 경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비판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사회 변화를 위해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할 때 종종 부딪치곤 하는 경쟁에 관한 물음들에 대해 체계적이고 명쾌한 해답을 기대해도 좋다.

저자가 말하듯, “경쟁을 줄이는 것은 결국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달려 있다. 그러나 구조의 변화는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경쟁의 굴레와 폐단에서 인간을 영원히 해방시킬 열쇠는 바로, 경쟁 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물질적∙실체적 이해관계를 가진 지배계급에 맞서 집단적 협력을 통해 저항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노동계급에게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경쟁 이데올로기를 더 잘 논박하는 것과 함께 노동계급의 투쟁에 연대하고 동참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포함한 인류 전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경쟁에 반대한다≫, 알피 콘, 이영노 옮김, 산눈,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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