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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됐는가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

김지혜(대학생)

[<노동자 연대> 온라인 기사 링크 : http://wspaper.org/article/16379]

문득,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모든 기억이 잊혀지길 바란 적이 있다. 살아있는 것이 부채감으로 느껴졌다.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후 나는 ‘세월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유령으로 만들어 버린 세월호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무관심이 미덕이라 여기며 나를 억압하고 방치하는 목소리에 귀 닫고 살았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는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내 고민들이 시간이 지나면 곧 사라질 울음으로 치부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무작정 ‘세월호를 기억하라’는 거리 행진에 참여했다. 2014년 4월 ‘가만히 있으라’ 침묵 시위를 시작으로 안산, 광화문, 시청으로 뛰어나갔다. 당시 내가 생각한 최선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물었다. 거리에 나가서, 심지어 청와대로 행진해서 대체 너희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거리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고, 침묵과 무관심은 늘어갔다. 언론에서의 세월호 보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반쪽짜리 특별법이 통과됐다. 너덜너덜해진 특별법 뉴스를 보며,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라’는 목소리가 공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상한 우울증 같은 것도 생겼다. 당시 ‘노동자연대’의 정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세월호 이전보다 더 회의적인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붙어 있는 ‘맑시즘’ 포스터를 보고, 무작정 전일 참가를 신청했다. 학교 수업에서 가졌던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무엇보다 ‘세월호 운동에 대한 평가’라는 강연이 그런 선택을 하게 한 것 같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식은 얕았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자본주의는 누군가의 불행과 죽음을 이용해 소수가 행복을 차지하는 사회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맑시즘’ 강연은 나에겐 희망을 볼 수 있게 해 줬고, 사회 변혁의 실천적 방법을 알게 해 줬다. 특히, 세월호 운동 평가 워크숍에서 ‘노동자들이 모든 작업장에서 손을 놓는 것만큼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점은 내가 느꼈던 공허함과 한계점을 알게 해 줬다. 세월호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려면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해야만 했다.

물론 자본주의의 모순과 사회 변혁을 위한 실천적 대안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곧바로 사회주의자가 되기를 결심하지는 못했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별 볼일 없는 작은 사립대에 다니고 있었고, 이제 곧 취업을 해야 하는 4학년이었다. 동기들은 스펙을 쌓는 데 여념이 없고, 졸업 후 알바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선배들도 있었다. 내가 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내가 봤던 기억을 지워내고 싶었다.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자본의 탐욕으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은 늘어갔다. 전쟁과 분단, 굶주림 등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죄책감 없이 죽이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세계를 외면하는 것이 더 끔찍하다는 게 자명했다.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아무도 잊혀지지 않기 위해 선택을 했다. 부조리한 사회를 기억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인간은 기억과 망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사회 변혁의 정치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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