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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고민하는 청년들을 위한 길잡이

나유정(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회주의보다는 그래도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자본주의가 그나마 낫지 않을까? (물론 극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갖는 자본주의도 별로지만)”

“사회주의는 북한이나 소련 같은 억압적이고 획일화된 사회 아니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라고 하면 이런 물음을 떠올릴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고, 사회주의를 자처하지만 극도로 궁핍하고, 독재가 만연한 북한을 마주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런 흔한 오해를 바로잡고, 야만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은 오늘날 반복되는 경제 위기, 극심한 빈부격차, 기후 위기, 산업재해 등을 겪으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저자 폴풋은 저명한 사회주의 언론인이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칼럼리스트로, 인기 있는 탐사 보도 기자였다.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오랜 당원으로 1974~1978년 <소셜리스트 워커>의 편집자를 지내기도 했다. 저자는 역사를 통해 사회주의의 진정한 정신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다.

 

사회주의의 핵심

민주적 권리를 전면 부정하는 홍콩보안법을 제정하고, 이에 항의하는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중국 정부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사회라 여겨졌지만, 1991년에 붕괴한 소련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서방 자본주의 나라들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회주의가 인간 해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에 대한 이런 왜곡을 탁월하게 걷어낸다.

흔히 사기업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없는 것이 사회주의의 핵심 특징이라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사회주의를 자처한 곳들에서는 정작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노동자 통제가 빠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라면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이루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소련,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처럼 사회주의를 자처한 나라에서 과연 그랬던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할 필요 없이 누구나 ‘아니’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의 노동자들은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고, 사회는 위로부터 통제됐다.

그래도 이런 나라들에서는 ‘계획 경제’가 이뤄지지 않았나? 저자는 “경제적 계획이라는 것만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정의할 수는 없”으며, “결정적 문제는 무엇을 위한 계획”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가 무엇을 표방했든 간에 이런 곳들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얼토당토않고, 1991년 소련의 붕괴가 곧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패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는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지침서

저자는 우선,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사회주의의 진정한 정신을 밝혀나간다(1장 ‘거센 파도’) “사회주의의 핵심은 위계적이고 관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회(자본주의)를, 노동 대중이 자신의 대표자들을 통제하고 대표자들은 그에 따라 행동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대체하는 것”이다.

2장 ‘최고조’에서는 그 가능성을 보여 줬던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살펴본다. 이 장에서는 러시아 혁명이 노동자 계급의 자력 해방 과정이었음을 보여 주고, 이후 “사회주의적 질서”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조직됐는지, 혁명이 어떻게 보통 사람들의 재능과 자신감을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는지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혁명 이후, 평범한 사람도 사회에서 중책을 맡을 수 있게 됐고, 세계 최초로 유급 출산휴가가 생겼으며, 낙태와 이혼을 금지하던 낡은 악법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혁명의 성과는 유지되지 못했다. 혁명 이후 러시아는 미국과 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에 포위돼 내전을 치르고, 경제 봉쇄 등에 시달리다 스탈린의 반혁명으로 결국 패배했다. 이 장에서 저자는 러시아 혁명이 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스탈린 이후의 소련 사회가 왜 사회주의가 아닌지도 함께 설명한다.

소련은 전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소련은 독재가 통치하는 국가자본주의 사회였고, 증권거래소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의 다른 곳의 자본주의적 독재와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야만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동유럽 국가들도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3장 ‘휘청거리는 권좌’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에서 일어난 항쟁들(1953년 동독, 1956년 헝가리, 1956년·1970년·1980년 폴란드)을 살펴보는데, 만일 동유럽 국가들이 진정한 사회주의였다면 왜 노동자들이 반란에 나섰던 것일까? 3장은 그 배경과 역사를 잘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국가자본주의가 실패한 것이 곧 시장 자본주의의 성공을 가리키는 것일까? 4장 ‘커지는 분노’는 그것이 결코 아님을 보여 준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가 성장할수록 빈곤과 착취가 심해지고 경제 불황은 가속화되고 있다. ‘자유 시장 10년’이라고 불렸던 1980년대 10년 동안에 절대 빈곤층이 증가했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1980년대 초보다 더 곤궁해진 처지로 1980년대를 마감했다. 자유 시장 체제가 성공할수록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도 늘었다.

현재 인류에겐 모든 사람의 기본적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기술·원료·지식·창의력이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이런 잠재력은 현실이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80억 명에 가까운 인류 모두가 풍족하게 살 만큼 자원이 충분한데도, 어떻게 그 풍족을 사회의 극소수만이 누리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두 가지 진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바로 착취와 계급의 존재다. 아무도 일하지 않으면 어떤 부도 존재할 수 없으며, 노동은 모든 생산물의 필수 요소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자들이 평범한 노동자들을 착취함으로써 이윤을 만들어 낸다. 자본주의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은 이 착취 체제가 작동하는 경제적 메커니즘이다.

더구나 이런 자본주의는 갈수록 더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기후 위기가 실질적 문제로 떠올랐고, 점점 더 불황의 주기는 짧아지고 있으며, 무자비한 삼림 파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어졌다.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자본주의에 예측 가능한 것이 하나 있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된다면, 어떤 위기가 닥쳐 오든 그 고통은 언제나 노동자와 서민의 몫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5장 ‘새로운 고지’에서 저자는 이런 자본주의의 악습을 끊을 대안은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사회주의는 사회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해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즉,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의 민주적 정신, 아래로부터의 통제,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협동을 생산에 대한 통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고지에 어떻게 다다를 수 있을까?

6장 ‘쟁취할 세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안이라고 여겨지는 방안 중 하나는 ‘의회를 통한 개혁’이다. 의회에서 좋은 법들을 입법해서 집행하거나 개혁을 지향하는 정당이 집권하는 것을 통해 사회를 더 평등하게,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후 영국 역사는 이것이 환상임을 보여 준다. 예컨대, 역대 영국 노동당 정부는 모두 실업을 없애겠다거나 적어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그렇게 하기는커녕 모두 실업률을 더 높여 놓고 임기를 마쳤다. 저자는 영국 노동당의 사례를 통해 의회를 통한 개혁의 한계에 대해 속 시원하게 파헤친다. 의회정치가 대중에게 “수동성을 설파”하며, “의회를 통한 개혁을 고수하면 변화를 위한 진정한 운동이 무장 해제된다”고 지적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우리가 쟁취할 세계는 바로 아래로부터 타오르는 투지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대체되려면, 그 변화의 원천은 착취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착취적 사회에 맞서는 투쟁이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의회 개혁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착취받는 사람들 자신이 착취에 맞서 조직하고 싸울 때만이 가능하다.

 

쟁취할 세계를 위해

이 책의 말미에서는 사회주의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나와 있다. 당장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능동적인 사람들은 소수다. 사회주의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인종·성별·국가·종교라는 경계를 넘어 투쟁을 확산하고 연결해야 한다.

가난과 불평등, 차별이 만연한 이 자본주의 사회가 싫고, 진정한 평등이 있는, 아래로부터의 행동과 통제가 있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충분히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을 소개해 주고 싶다.

지금만큼 사회주의가 유의미한 때는 없었다. 진정한 사회주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핵심 요소인 사회주의,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으로 쟁취하는 사회주의 말이다. 우리에겐 쟁취할 세계가 있으며, 지금은 사회주의자들이 주저함을 떨쳐 내고 세계를 쟁취할 수 있는 곳으로 조직하러 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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