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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 청년학생 기고글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권리다
여성해방을 바라는 대학생들이라면 낙태권 전면 보장을 요구하자

이지원(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기 전까지 한국에서 낙태는 형법상 ‘죄’였다. 극히 제한적 사유로만 합법적 시술이 가능했고, 그 외의 낙태 시술을 한 여성은 1년 이하, 의사 등은 2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평범한 여성들이 낙태 사실을 숨기며 괜한 자책감에 시달리고, 낙태 후 제대로 된 휴식(휴가)도 보장받지 못했다. 건강보험 적용도 되지 않아 값비싼 수술비를 감당해야 했다. 국가가 단속 강화에 나서면 수술비가 치솟고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그러나 OECD 36개국 중 30곳에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를 허용한다. 세계적 추세로 보더라도 한국의 낙태죄 폐지 결정은 꽤 뒤늦었던 것이다.

왜 낙태권이 보장되고, 안전한 낙태 시술이 이뤄져야 하는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낙태권 운동의 세계적 구호인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내 몸은 내 것이다)”는 단순하지만 낙태권을 둘러싼 쟁점의 핵심을 보여 준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더군다나 단순히 ‘10개월’만 참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같이 양육의 책임이 개별 가정,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임신 기간 그리고 출산 이후의 상황까지 숙고해 낙태를 결정한다.

여성들이 낙태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고용 불안정, 저소득 등)’, ‘자녀계획(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 조절 등)’였다(2018 정부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이밖에도 낙태에는 여러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낙태의 압도 다수가 불법일 때에도 많은 여성들은 낙태를 해 왔다. 심지어 단속이 강화되고 일부가 처벌받는 일이 있더라도 여성들은 필사적으로 낙태를 시도한다. 이처럼 처벌과 규제는 낙태를 멈추지 못하고, 오로지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할 뿐이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낙태 처벌 강화에 반대한 폴란드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은 옷걸이를 들고 나와 “뒷골목 낙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매년 약 2만 2000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사망한다.

여성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임신의 유지 여부는 오롯이 여성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국가도, 의사도, 남성 파트너도 아닌 여성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여성이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낙태할 권리는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낙태는 여성의 요청만으로 이뤄질 수 있어야 하고, 사유와 기한 등 어떠한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 또한 이미 낙태를 결심한 여성에게 여러 절차들을 추가적으로 두는 것은 불필요한 도덕적 압박감만 키울 뿐이다.

낙태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대폭 줄이는 조처도 필요하다. 낙태 수술에 의료보험을 적용해야 하고, 미프진 등 낙태 약물도 즉각 도입해야 한다. 여성들이 낙태 이후 유급 휴가 등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여성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별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노동계급과 서민층의 여성들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권리다.

낙태 반대론자들의 위선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낙태는 살인”이라며 낙태를 선택한 여성을 도덕적으로 비난한다. 헌재 결정 이후에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저지하고 낙태 허용 범위를 최대한 좁히려고 압력을 가했다. 이들은 낙태 시술 의사에 대한 처벌 조항 유지‧강화, 낙태 전(前) 숙려기간과 필수 상담제도를 통해 여성을 압박하는 방안 등을 주장한다.

낙태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생명 중시”는 완전한 위선이다. 낙태 반대론자들 사이에는 전쟁을옹호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안전에 무관심한 보수적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낙태 반대론자들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고 희생을 감내하며, 안전하지 못한 낙태를 시도하다가 목숨마저 잃는 끔찍한 현실을 없는 셈친다.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모체에 온전히 의존하는 태아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그 자체로 독립된 인격체일 수 없다.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권리’를 살아 있는 여성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것은 여성을 태아를 담는 인큐베이터로 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만약 인간이 될 “가능성”만으로 곧 인간이라고 한다면, 피임과 자위도 해선 안 되고 성 관계는 오로지 출산을 위해서만 해야 한다는 반동적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낙태권을 온전히 지지하려면 이런 위선적 생명권 논리와 절충하거나 타협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이런 의문이 남을 수 있다. 낙태를 합법화하더라도 허용하는 기간과 사유에 제한을 둬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정부의 입법예고안도 임신 14주까지 낙태는 조건 없이 허용하지만, 그 뒤부터 임신 24주까지는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하고(이때 국가 지정 기관 상담과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한다), 임신 24주 이후 낙태는 금지했다.

그러나 기간과 사유에 제한을 두지 말고 여성의 낙태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첫째, 후기 낙태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임신 22주가 지나가면 태아가 여성의 몸 밖에서도 생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중 일부도 ‘임신 22주’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이며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해 (임신한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라며 주수에 제한을 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 태아의 독자 생존 능력이 향상됐다는 의학적 근거는 거의 없다. 임신 30주에 태어난 아기라도 인큐베이터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

후기 낙태는 극소수로 이뤄지고 있다. 낙태 허용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도 대부분 후기 낙태는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필요시 후기 낙태도 할 수 있게 하는 나라들에서 후기 낙태의 비율은 매우 낮다. 후기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임신 초기에 낙태할 시기를 놓쳐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거나, 태아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됐거나, 혹은 자신을 둘러싼 조건이 변해 후기 낙태를 선택하는 것이다. 대부분 절박한 심정에서 후기 낙태를 선택할 텐데, 후기 낙태가 금지되면 이런 여성들의 처지를 더 악화시키고 위험을 키울 수 있다.

둘째, 낙태의 사유를 제한하는 것은 그 조건을 충족하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문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낙태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여성이 아니라 조건을 심의하는 의사나 국가기구 같은 제3자가 갖게 되는 것이다.  24주까지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가 허용되면 현재 이뤄지는 낙태의 많은 부분을 포괄하긴 할 테지만, 여성에게 온전히 낙태 결정권을 주는 게 아닌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사유 제한을 둬서 부분적으로 낙태가 허용되면 그 외의 낙태 시술에 대해서는 단속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셋째, 낙태를 위해 상담과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도 불필요하다. 독일에서는 상담할 때 ‘태아가 생명에 대한 독자적 권리를 가진다’며 출산을 권유한다. 이런 제도는 이미 낙태를 결심한 여성에게 죄책감만 심어주고 낙태를 지연시킬 뿐이다. 서구의 경험을 보면,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런 제도를 낙태 선택을 어렵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여성 해방을 위한 필수적 권리

자본주의 체제는 여성에게 어머니와 주부로서의 역할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강요하고, 이를 통해 여성들이 가정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일하고, 집 밖에서는 노동자로서 싼 값에 일하도록 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여성의 몸을 자본주의 논리에 종속시키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인한다.

신체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뺏으려는 것도 여성 억압의 일부다. 여성이 자신의 출산을 통제할 수 없다면 자기 삶을 계획하거나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낙태권은 여성 해방에서 필수적인 권리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낙태권 보장하기 위한 운동이 벌어졌다. 한국도 그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벌어진 위대한 투쟁들 덕분에 여성의 권리는 더 전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이렇게 쟁취한 성과들을 도로 빼앗으려고 하거나 변화 염원을 짓밟아 왔다.

문재인 정부도 “페미니스트 대통령” 운운했지만 실제로는 여성의 삶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여성들의 변화 염원을 배신해 왔다. ‘비웨이브’ 시위가 한창이던 2018년 여름,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낙태를 단속을 강화하는 행정규칙을 도입하려 했다. 여성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유엔 권고도 무시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낙태죄 전면 폐지 염원을 거슬러 낙태죄를 유지하고 일부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불법촬영 처벌, 채용 성차별 문제 해결 등을 중요한 쟁점마다 변화 염원을 배신해 왔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독립적인 목소리가 필요한 까닭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에서는 1973년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헌법적 권리라고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어질 위협에 처했고, 실제 일부 주에서는 낙태금지법이 통과 되기도 했다. 여러 나라에서 낙태가 부분적으로만 인정되고, 그 조차도 되돌리려는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들은 여성의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전투가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노동력 재생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해 이득을 얻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도전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 낙태죄 폐지와 진정한 여성 해방을 위해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 건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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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책자 ⟪낙태, 여성이 선택할 권리⟫

(정진희최미진 지음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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