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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기고글

대학에서 운동 건설하기 – 학생회로 충분한가?

얼마 전 여러 대학에서 시국선언이 발표됐다. 많은 대학에서 총학생회와 다양한 좌파 단체 등이 시국선언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좌파 단체가 주도해 다른 학생 단체와 개인들을 모아 시국선언을 발표한 곳도 있다.

그러자 한 가지 논란이 벌어졌다. 왜 총학생회가 아닌 단체가 시국선언을 주도하느냐, 총학생회는 전체 학생을 대표하는 기구인데 왜 다른 단체들의 이름을 연명해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를 일부 학생들이 한 것이다. 이런 이의제기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는 여러 단체를 배제하고 총학생회 중심으로만 박근혜 퇴진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봐도 이런 주장은 터무니없이 비민주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선출한 기구이므로 학생회 이름으로만 시국선언을 해야 한다는 이들 주장의 논리를 따른다면, 시민들은 국회의원이나 시장, 구청장 이름으로만 견해를 발표해야 한다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식적으로 선출된 사람·기구만이 견해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은 보통 시민이나 학생은 적극적으로 나서 견해를 밝히거나 운동을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매우 비민주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운동주의

한편 학생회만 운동을 대표해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는 ‘운동(만능)주의’도 포함돼 있는 듯하다. 운동주의는 다양한 정치단체들이 자기 정치를 드러내면 운동이 분열한다고 보면서, 정치조직은 불필요하고(심지어 없어져야 하고) 운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는 견해를 말한다. 그래서 정치조직들이 자기 정치를 드러내지 말고 학생회 같은 일상 조직으로 용해돼야 한다고 여긴다. 흔히 운동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정치가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초보적인 수준일지라도 말이다. 무솔리니의 감옥에 수감됐다 사망한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 말대로 “누구나 철학자다”.

11월 5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전국 동시다발 대학생 시국대회 공식 학생회 기구가 움직일 때까지 학생들은 ‘대기’하고 있어야 하나? ⓒ사진 이미진

학생회도 비정치적인 조직이 아니다.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그 정치색이 다양하다. 대학 시국선언에서 어떤 학생회는 박근혜 퇴진 요구를 걸었지만, 또 다른 학생회들은 퇴진을 분명히 요구하지 않고 대통령 특검 요구 등을 걸었다. 이것만 봐도 학생회의 정치색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박근혜 퇴진 운동이 학생회로만 표현돼야 한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본의가 아닐지라도) 학생회를 집행하는 학생들과 정치 성향이 다른(흔히 더 좌파적인) 학생들이 자신의 정치를 표현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

운동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주장을 펴지 말아야 운동이 단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어떤 운동이든 단선적 논리에 따라 발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참가자들은 투쟁 방법 등을 놓고 선택을, 결정을 해야 한다. 따라서 단결은 의식적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각각의 물음과 대결해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운동이 더 크게 단결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운동은 분열로 실패하게 된다.”(<노동자 연대> 178호에 실린 최일붕의 ‘정치단체의 개입은 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가?’)

반대로, ‘정치 배제’를 빌미로 다양한 단체들이 의견을 내는 것을 막는 것은 오히려 운동 내에서의 비민주주의와 음모적 권모술수로도 흔히 이어질 수 있다. 서로의 정치를 드러내고 공개적 논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다른 명분을 들어 자신과 다른 정치 경향을 공격하려 하기 때문이다. 학생회는 아니었지만 이화여대 본관 점거 농성자들이 “운동권”을 배제하자며 캠퍼스의 왕 노릇을 하려 한 사례에서 이 문제점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다시금 그람시의 말을 빌면 “지도는 지배가 아니다.”

우파적

실제로, 좌파 단체들이 시국선언 조직에 착수한 것에 이의제기한 사람들은 주로 좌파에 반감을 가진 학생들인 듯하다. 20대의 60퍼센트가량이 박근혜 퇴진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퇴진 지지자 중에도 중도적 정치 성향 때문에 좌파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학생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또,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을 이용해 여론을 좌파에게 공격적으로 몰아가려는 우파적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 호 <노동자 연대> 웹사이트에 실린 장호종의 ‘박근혜 퇴진 대학생 시국선언 관련 온라인 논쟁: 가상과 현실을 구분해야’를 보라.) 이들은 운동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이 쉽게 받아들이는 소박한 단결 정서를 이용해 좌파를 밀어내려 하는 것일 게다.

사실 시국선언은 학생회로만 표현해야 한다는 일부 인터넷 주장에 대학 내 일부 좌파가 타협해서 문제를 키운 측면이 있다. 이런 추수주의는 형식주의적 민주주의관 때문에 학생회 같은 공식 기구의 권위를 과도하게 보는 그들의 오해가 반영돼 있다.

선출된 대표자들이 모든 사람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학생들은 보통 때는 소외와 천대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비활성적 상태에 있다가도 정의감을 자극하는 특정 사건 등을 계기로 갑자기 투쟁에 나서게 되는 경향이 있어, 그 격차가 매우 크다. 지금처럼 학생들의 의식이 급변할 때는, 일상적 시기에 선출된 학생회가 학생 다수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런데도 선출된 대표의 권위를 과대하게 보아 학생회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운동을 제때에, 제대로 건설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이화여대에서 학생 2백36명의 서명으로 정유라 관련 비리 척결과 박근혜 퇴진을 위한 학생총회가 발의됐다. 그런데 일부 중앙운영위원들은 이 총회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 학생회의 약점을 보여 주는 사례다.

게다가 학생회는 다양한 학생을 포괄하는 일상 조직이라는 성격 때문에 후진적 관념의 압력을 받기 쉽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 여론이 대규모로 표출되는 현재 국면에조차 일부 학생회가 일부 인터넷 글들에 흔들린 것이다.

현실에서 여러 운동은 학생회로 표현되지 않았다. 이화여대에서 86일간 끈질기게 이어진 본관 점거 투쟁은 학생회가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 이화여대 점거 농성이 끈질기게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운동의 초점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한 점거 농성 덕분이었다. 본관 점거 농성 주도자들이 총학생회나 좌파(특히 노동자연대)를 배타적으로 대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말이다.

2011년 서울대 학생들의 법인화 반대 점거 투쟁은 반대 사례다. 당시 서울대 본부 점거 농성에 열의 있게 참가하고 있던 학생들은 실제로 점거 농성이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점거에 참가하지도 열의도 별로 없던 학생회들은 점거 농성 해제를 결정했다. 이는 학생회가 투쟁을 대변하기는커녕 배신한 것이다.

물론 공식 기구라는 성격 때문에 때로, 학생회가 주도하는 운동에 학생들이 더 많이 참가할 때도 있다. 따라서 대중 투쟁이 커지길 바라는 좌파적 활동가들이 학생회 내에서 활동하는 것은 때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도 아니거니와(학생 일반의 정서가 저항을 지향하는 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학생회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일관되게 전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정치를 추구하는 학생들이 상당한 기반을 갖출 때 학생회 집행권 활용이 유용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회 활동가들이나 다른 여러 학생들을 더욱 투쟁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학생회 참여 전에 먼저 혁명적 정치조직 건설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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