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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기고글

정치 세력과 학생회가 배제된 덕분에 투쟁이 효과적이었는가?

최경희 총장 아래서 벌어졌던 항의 운동을 돌아본다

http://wspaper.org/article/17554

김승주 (이화여대 학생,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20일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화여대 본관 점거 투쟁은 눈부신 자발성과 단호함으로 1차 승리를 거두고, 이제 최경희 총장의 퇴진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본관 현장과 온라인 커뮤니티(‘이화이언’)에서 활동하는 익명의 점거 조직자들은 그러한 성과가 ‘학생회와 정치 세력을 배제하고 학생 개인들의 순수한 자발성에만 기반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기존 운동권은 자기들끼리만 운동하고 결국엔 고립돼 패배한다’, ‘정치 세력이 개입하고 지도부가 생기면 나머지 다수는 수동화 되고 끌려 다니기만 할 것이다’ 등의 주장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운동이 충분히 성과를 거두지 못 한 원인은 지도부의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 속에는 언제나 좀 더 헌신적이고, 좀 더 적극적인 소수(지도부)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운동권과 학생회가 밀려난 본관 안에서도 ‘자원봉사벗’이라는 주도적 그룹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지도부가 있냐, 없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지도부’냐이다. 지도부가 얼마나 민주적인가, 시의적절한 방향성과 전술을 얼마나 잘 내놓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조직했는가 등에 따라 투쟁은 성패가 갈린다.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그 동안의 운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권 학생회로부터 독립적이기

올해 이화여대 총학생회를 주도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민중연합당계 또는 그 주변이다. 또 변혁당계 활동가들이 사범대 학생회, 동아리연합회를 주도하고 있어 중앙운영위원회(총학생회장단과 단대 학생회장단으로 구성된 의사결정기구, 이하 중운위)에 참가하고 있다. 이외 나머지 단대 학생회 대표자들은 특별한 정치 경향을 표방하지 않는 자유주의 ‘비운동권’에 해당한다.

이들의 임기가 시작됐을 때 학교 당국은 프라임 사업(산업연계선도대학 사업, 이대에서는 2017년부터 전체 정원의 10퍼센트를 다른 학과에서 줄여 이공계에 몰아주게 된다) 지원 준비를 추진하고 있었다. 학교가 일찍이 날치기로 지원해버린 코어 사업(대학인문역량강화 사업, 이대에서는 인문학과 산업을 연결시키는 학과들이 신설될 예정이다)도 학생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총학생회는 개강 초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해 대응하려 했다. 또 중운위에서 총회와 채플거부 등의 공동행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비권 학생회 대표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일부는 설문조사 결과(프라임·코어 사업 추진 반대 70퍼센트)가 학생 전체의 입장을 대표하지 못한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총학생회가 마련한 학생회 확대간부 대상 프라임·코어 사업 토론회는 참가율이 저조해 무산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인문대 학생회는 코어 사업을 지지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비권 학생회 대표자들은 처음부터 학생들의 들끓는 불만을 대변하고 투쟁에 앞장서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3월 초 전학대회에서 전체학생총회 개최의 건이 부결됐다. 반대자들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총회 관련 예산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조조정 계획이 몰아치고 학생들의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납득이 안 가는 주장이었다.

총회 부결 후 그들은 본관에 종이 비행기 접어 날리기, 소원 나무 만들기, 지지 스티커판 만들기 등의 대안들을 내놨다. 물론 학생들의 자신감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는 기층의 불만을 조직하는 노력을 건너뛴 채 ‘과격한’ 전술만 밀어붙인다고 그대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활동만으로는 학생들의 불만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아쉽게도 총학생회는 이런 자기제한적 전술에 타협했다.

변혁당계 활동가들은 ‘일방적인 이화여대의 구조조정에 맞선 <도전>’이라는 실천단을 꾸려 활동했고 좌파로서 주장을 꾸준히 내왔다. 또 학생회 체계 바깥에서 집회와 서명운동 등도 조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운위 내 좌파로서는 거의 한 구실이 없었다. 비권 학생회가 투쟁 계획의 수위를 낮추려고 할 때마다 논쟁을 벌이고 이를 공개해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만들었으면 더 효과적으로 운동을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중 운동 건설하기

총회 안건을 부결시킨 비권 학생회장들은 “2014년 총회 뒤에 이뤄진 게 뭐냐”고 말했다. 2014년에는 몇 가지 요구안을 걸고 2천여 명의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아 총회를 성사시켰었다. 당시 총학생회도 민중연합당계였다.

하지만 총회는 정족수를 채운 뒤 결의안건만 다루고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2천여 명의 학생들은 총회에서 ‘요구안을 지지한다’는 안건에 손을 들었을 뿐, 그것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를 놓고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없었다. 총회 이후의 행동은 또다시 학생회 중심의 캠페인로 귀결됐다. 만약 총회에 모인 2천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행동 방안을 논의해 결정하고, 즉각적인 실천에 옮겼다면 학교는 더 큰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해인 2015년에도 최경희 총장의 ‘불통’ 행정은 쉴 틈이 없었다. 총장은 ‘신산업융합대학’ 신설 계획으로 구조조정의 포문을 열었다. 신산업융합대학은 그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의류학과는 의류산업학과로, 체육학과는 글로벌스포츠산업전공 등으로 바꾸는 등 기존 학과를 기업 이윤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재편해 새로 만든 단과대학이었다.

같은 해 5월에는 ‘파빌리온’(비싼 카페와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점이 들어선 건물)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이 계획은 관광 코스로 변해버린 학교와 안 그래도 비싼 학내 시설들 때문에 화가 나있던 학생들에게 분노를 샀다. 민중연합당계 총학생회는 공사 현장을 가리고 있는 천막을 제거하고 공사를 실질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는 농성을 중운위에 제안했다. 하지만 중운위 내 다수 대표자들이 반대했고 결국 이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대신 중운위는 학교 측과 협의회를 추진하는 한편 설문조사를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면담, 설문조사 연장, 기자회견, 리플릿 뿌리기 정도로는 대학 구조조정과 돈벌이에 대한 학교의 의욕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6월 19일 중운위에서 총학생회장은 “파빌리온 반대 투쟁을 현실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기 어려우며 장기적으로 가져가기도 어렵다”며 “투쟁을 1차적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강력한 대응”이 “현실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학생회 대의체계 내에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학기가 되자 총학생회는 중운위에서 채플 거부와 약식 집회 겸 문화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비권 학생회 대표들은 “자신이 없다”, “애매하게 덤비면 우리에 대한 인식만 안 좋아진다”며 반대했다.

결국 이 운동은 “리셋 이화”라는 이름의 선언 스티커 받기 운동으로 바뀌었다. 이후 학생회 대표자들이 중운위에서 자평했듯이 이것은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한 학생회 중심의 캠페인”이었고 “(이정도 수위로는) 총장님에게 먹히지를 않았다.” 투쟁이 지지부진하는 동안 최경희 총장은 신산업융합대학 등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덕분에 박근혜 정부의 ‘학부교육선도대학’ 육성(ACE) 사업을 따냈다.

당시 총학생회장은 갑작스레 중운위에서 단식 투쟁 결의를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리셋 이화’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뜻을 알게 됐다. 학생들은 ‘학생회의 행동을 지지는 하는데 뭔가 되는 게 없다’, ‘투쟁이 흐지부지되고 결론적으로는 잘 안 되기만 하는 것 같다’고 한다. 계속 패배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학생회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했구나, 하는 기억이 될 수 있도록 총학생회가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투쟁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단식 투쟁을 시작하려 한다.”

총학생회장이 그 동안 조직해 온 운동들을 진지하게 곱씹어보고 교정하기 보다는, 단식 투쟁으로 ‘적극성’과 ‘헌신성’을 입증하려고 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대표자가 희생하는 방식의 투쟁은 다수를 수동화시킬 위험을 갖고 있다.

총학생회장은 15일 간의 단식 끝에 총장과의 면담 자리를 얻어냈다. 하지만 신산업융합대학 신설이나 파빌리온 등 학생들의 불만을 크게 샀던 쟁점들에 비춰봤을 때 결과적으로 얻어낸 것은 거의 없었다. 학교 당국의 졸속 추진을 막기 위해 총학생회장이 요구했던 ‘정책예고제’는 “최대한 미리 알려주도록 애써보겠다”는 총장의 공수표로 마무리됐다.

이처럼 2015년은 보통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답답하고 아쉬움이 많은 해였다.

뜨거워져 온 기층의 분위기

2016년 3월, 전학대회에서 총회가 부결된 뒤, 총학생회와 중운위는 “프라임·코어 사업에 대한 학생 의견 수렴 요구”를 포함한 6대 요구안을 걸고 ‘이토피아’라는 서명 받기 운동을 진행했다. 이 운동은 3월 31일까지였는데, 이 날은 프라임 사업 지원 마감 날짜이기도 했다.

그런데 서명운동보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낸 것은 총학생회가 3월 30일에 긴급하게 조직했던 본관 기획처 농성이었다. 급하게 조직된 농성이었지만 많은 학생들이 지지를 보냈다. 덕분에 3월 31일에 진행된 ‘이토피아’ 마지막 집회에는 250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학교 측의 ‘불도저’ 행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경영대 학생회장이 중운위에서 한 말처럼 “31일이 마감 날짜인 줄 알면서도 집중 행동 날짜를 그 날로 잡은 것은 문제였다.” 지원서 접수를 막으려면 일찍이 대중적 투쟁을 조직해 싸웠어야 했다.

프라임 사업 지원이 강행된 이후 학생들 사이의 분노는 더욱 끓어올랐다. 총학생회가 “이화는 죽었다”라는 제목으로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자, 수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정문에 근조 화환을 설치했다. 채플 시간 중간에 진행한 면담 요구 손피켓 들기 운동은 커다란 호응을 받아서 “페이스북 총학 게시물에는 8백개 이상의 ‘좋아요’가 달릴” 정도였고 “이 캠페인을 하루만이 아니라 더 지속하자는 문의가 계속 들어왔다.”(총학생회장)

5월 대동제 때는 총학생회가 프라임 사업 반대 현수막 걸기 운동을 진행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학교 측이 대동제에 교비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총학생회의 모금 운동에 열흘 만에 2백만 원을 모아준 일도 있었다.

축제가 끝난 후 시험기간이 시작되고 방학이 다가오자 상황은 다시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층에는 뜨거운 불만이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이 부글부글 끓던 6월에, 학교 측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지원을 또다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대중 운동

학교 측이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지원을 결정한 이후 총학생회와 중운위는 절차 상의 비민주주의를 비판하며 입장을 발표했지만 7월 15일, 이화여대가 이 사업에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공식적 대응은 없었다. 7월 26일 대학평의원회 회의 자료를 통해 평생교육 단과대학의 이름(‘미래라이프 단과대학’)과 소속 전공이 발표되자 ‘이화이언’은 분노로 들끓었다.

몇몇 학생들은 총학생회에 SNS를 통해 대응 계획을 물었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받지 못했다. ‘이화이언’에는 “총학은 미리 알고서도 뭐 했던 거야?”, “항상 필사적인 모습은 보는데 그게 매번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에만 보여” 같은 불만이 표출됐다.

‘이화이언’은 이내 독자적인 행동 계획(김활란 동상 앞 시위)을 세웠다. 학생들 사이에서 “퍼포먼스 따위는 택도없고 대규모 시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온건한 방식은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총학생회는 분위기가 점점 뜨거워지자 7월 27일 밤에야 비상 중운위를 열어 그간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하고 28일 집회와 본관 점거 계획을 내놨다. ‘이화이언’은 이 계획에 함께 했다. 그러나 본관에 진입하고 난 뒤 총학생회는 투쟁에서 주도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니셔티브는 ‘이화이언’ 학생들이 발휘했다.

반작용으로 생긴 약점

평생교육 단과대학 철회 본관 점거 농성이 시작된 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 이화여대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뭉쳐서 뭔가를 해낸 건 오랜만, 아니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참다 참다 세번째에서 폭발한 것이었거든요.” 13학번인 이 학생은 학교에 입학한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투쟁을 본 것이었다.

일상적으로는 학생회 대표자 또는 소수의 활동가가 운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소수의 활동만 조직되고 지나치게 자기제한적인 전술이 반복되면, 대중이 직접 행동에 나설 기회가 제한되고 학생들은 자신이 수동화된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중이 동참하지 않는 운동은 요구를 성취해낼 만한 파워를 가지기 어렵다. 2015년 총학생회장의 단식 농성은 헌신적이었지만, 그 끝에 성사된 면담에서 총장이 양보한 것은 거의 없었다.(투쟁의 힘이 충분치 못했다는 것이지 투쟁을 회피했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진보적 성격을 가진 총학생회가 중운위나 전학대회에서 학생회 대표자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것은 옳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치적 입장 차로 여의치 않을 때는 직접 기층 학생들의 압력을 조직해 이들을 견인해야 한다.

여러 차례 총학생회를 운영한 민중연합당 계 활동가들은 학생회 대의체계 내에서만 운동을 건설하려 했고 이 때문에 전체학생총회, 공사 중단 농성, 채플 거부 등 전술의 결정적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런 경험의 반복은 투쟁을 바라는 학생들로 하여금 그 진정성과 능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지금 본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이화여대 학생들의 놀라운 자발성을 보여 줬고, 불통 총장을 답답하게 여기던 학생들에게 커다란 자극제였다. 본관 농성 조직자들이 자부하듯, 이번 운동은 다수가 능동적으로 참여한 진짜 대중 운동이었기에 강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성과가 ‘운동권’ 퇴출의 근거가 되거나 ‘지도부 있는 운동은 망한다’는 식의 교훈으로 남아선 안 된다.

이 운동에는 정치 세력과 진보 학생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긴 약점이 있다. ‘정치적 순수성’ 강조하며 사회적 연대 거부하기, 본관 폐쇄적으로 운영하기 등. 학교 당국과 정부, 보수 언론들이 이 운동을 고립시키려고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고 있는 지금 운동의 폭을 좁히는 태도는 위험하다.

어떤 운동이든 중립적인 정치적 공간을 형성하지 않는다. 운동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참가자들은 투쟁 방법 등을 놓고 각자의 견해를 충분히 내놓고 토론하되,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배제가 아니라 그러한 건설적인 평가 과정 속에서 ‘운동권’과 학생회의 성과와 실수를 공정하게 돌아보고 다같이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진보적 학생회와 좌파들도 지난 몇 년을 돌아보고 실수와 오류가 있었다면 공개적으로 교정해나갈 필요가 있다. 노동자연대 이대모임도 이 과정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개방적인 토론과 공정한 평가 속에서 운동이 더욱 발전해, 본관 점거 투쟁이 강력한 힘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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