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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평] 《깻잎 투쟁기》
농업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조명하다

양선경  노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 회원

《깻잎 투쟁기》 우춘희 지음, 교양인, 2022년, 16000원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민은 201만 명이 넘고, 이 중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민은 22만 3374명으로 재외동포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이렇게 입국한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적용받는다. 그중에서도 농업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만 8000여 명인데(2022년 기준), 이들의 조건은 열악하기로 악명 높다.

얼마 전 출간된 《깻잎 투쟁기》는 농업 이주민의 현실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며, 그들의 편에 서서 열악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한다.

비싸고 열악한 숙소

2020년 말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열악한 숙소에서 잠을 자다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숙소는 컨테이너나 가건물인 경우가 많고, 냉난방이 잘 되지 않으며,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속헹 씨의 사망 이후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숙소에 살면서도 비싼 숙소비를 내고 있다(2021년 추산 1인당 평균 15만 원). 상시 거주 시설로 옮기면 숙소비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

월급의 8~15퍼센트를 숙소비로 징수할 수 있다는 정부의 지침 탓에 이주노동자들은 월급이 오르면 월세도 오르는 기막힌 상황에 놓여 있다.

고용허가제 노동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사업장을 이동하려면 고용주의 허락이 필요하고, 사업장 변경은 3년간 3회로 제한된다.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노동자 체류 자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열악한 조건을 강제한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쫓겨나거나 미등록이 될까 두려워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지 못해도, 통장이나 여권을 빼앗겨도, 여성의 경우 성희롱 피해를 당해도 저항하기 어렵다. 견디다 못해 차라리 미등록이 되기를 선택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임금 체불 문제도 심각하다. 2020년 기준 임금 체불을 당했다고 신고한 이주노동자는 3만 1998명이었고 임금 체불액은 1287억 원이나 됐다. 저자가 만난 한 노동자는 6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임금 체불을 당해도 입증 책임은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자신이 일한 시간을 매일 기록하는 이주노동자도 있지만, 국가는 증거 능력이 없다며 사용자 편을 든다. 운이 좋아 체불 임금을 받는다고 해도 사장이 주장한 시간만큼만 인정돼, 노동자가 주장한 것의 절반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이동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폭력을 겪는 경우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잠금장치가 허술한 숙소와 불안정한 체류 자격 탓에 성희롱과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서는 조사에 응한 여성 이주노동자 385명 중 11.7퍼센트가 성희롱과 성폭행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성희롱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가 고용센터에 신고하면, 입증이 어려우니 그냥 임금 체불로 신고해서 사업장을 변경하라는 답을 듣기 일쑤다. 심지어 성폭력 사건 수사 결과 혐의 없음으로 판정 나면 이주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따른다. 혐의 없음이 곧 거짓 고소임을 뜻하는 게 아닌데도, 피해 이주노동자는 앞으로 사업장을 알선받을 수 없거나 강제 추방당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차라리 도망쳐 미등록 상태가 되는 것을 택하곤 한다.

의료 사각지대

2019년 정부가 개악한 이주민 건강보험제도도 이주민들을 고통으로 내몬다. 저자는 이 제도가 왜 인종차별적인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소득과 재산 수준과 상관없이 내국인 건강보험료의 평균인 약 11만 원을 낸다(2020년 기준). 피부양자 인정 범위도 내국인보다 좁고, 보험료가 체납되면 곧바로 체류 자격에 불이익이 생긴다.

건강보험료 재정수지 누적 흑자는 2018년부터 3년간 무려 1조 원이 넘는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렇게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지만, 정작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는 경우는 드물다. 한 달에 많아야 두 번 쉬는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병원에 갈 시간도 없다. 병원을 간다고 해도 언어 지원이 안 돼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사장들은 이주노동자가 일하다 골병이 들면 그냥 내쫓아 버린다.

저자가 인터뷰한 농촌의 인력사무소 관계자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실질적으로 단속하면 노동 시장이 멈춰 버릴 거라고 말한다. 농업 이주노동자 중 80퍼센트가 미등록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여러 언론들이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동안 이주노동자가 없어 인력난을 겪은 사업장들에 대해 보도했다. 특히 농업·축산업 분야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려 하지 않아 이주노동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지배자들은 이주민의 노동력을 저렴하게 이용하면서도, 복지는커녕 안정적 체류도 보장할 생각이 없다. (‘전문직’ 이주노동자는 예외다.) 오히려 정부는 이주민이 내국인의 일자리나 복지를 빼앗는다며 이주민과 내국인을 이간질한다.

이간질

그러나 이주민들은 내국인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다. 통계로 봐도 내국인 일자리와 이주민의 일자리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실업과 이주노동자 유입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실업률은 근본적으로 경기 변동과 관계있다.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와 높은 실업률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불만을 이주민에게 돌리려고 거짓말을 일삼는 것이다.

지배자들과 달리 노동계급은 이주민 차별에 이해관계가 없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는 내국인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에 하향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가 함께 고용된 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은 이주민 차별을 강화해 전체의 조건 개선을 어렵게 만들려고 한다. 내국인 노동자는 그런 사용자에 맞서 이주노동자와 단결해야 더 나은 조건을 따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마주하고, 그 현실을 바꿔 나갈 투쟁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노동자 연대>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https://ws.or.kr/article/2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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