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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청년학생 기고글

모두가 ‘잘’ 사는 세상

이선희

<노동자 연대> 신문 기사 링크 http://wspaper.org/article/16183

 

나는 어려서부터 그 누구보다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컸다. 그런 나에게 어른들은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취직하면 ‘잘’ 사는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안타깝게도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패배감에 물든 채 대학에 입학했고, 방황을 하다 좋은 기회가 닿아 회사를 다니게 됐다. 근 2년간의 회사 생활을 통해 나는 계급의식을 갖게 됐고, 내 세계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회사를 다니기 전까지 나는 나를 노동 계급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니, 되려 지배계급이 될 거라 생각했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지만, 그리고 내 성적과 내가 입학한 대학의 이름값은 그리 높지 않지만, 나는 그 용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정환경과 당장의 내 능력이 안 따라줘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는 내가 어렸을 때 꿈꿨던 것처럼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거리에서 임금 인상을, 복지를 요구하며 팻말을 들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면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몸부림이라 생각했다. 나는 저 무리 속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그게 오산임을 깨달았다. 회사에 입사한 후, 내 24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모두 회사의 것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했고, 내가 아니어도 대체 될 소모품은 언제나 준비돼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가 날 크게 비난한 것도 아닌데 조그마한 일로도 쉽게 모멸감을 느꼈고, 조직에서 내 위치와 동기들의 성과를 보며 초조해했다. 또한 선배들을 보며 악전고투 후에 어렵사리 용이 된다 해도 그 용도 언제든지 나락으로 빠질 수 있고, 용의 삶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정답이라고 믿었던 삶의 방향이 오답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내 업무는 홍보 마케팅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사치를 조장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정당화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잘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잘 산다’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잘(well)’, 그러니까 ‘건강하게 산다 혹은 ‘올바르게 산다’ 가 아닌 ‘부유하게 산다’다. ‘잘 산다’는 왜 부유함과 상통할까? 부유하게 산다면 ‘잘(well)’사는 삶인 걸까? 그럼, 어떤 삶이 정말 ‘잘(well)’ 사는 삶일까? 이런 생각이 들고 나니, 나에게 장밋빛 인생을 내어줄 것이라 믿었던, 자본에 침식된 내 이전의 시간들이 억울했다. 더 이상 속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싶었고, 그래서 다시 학교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게 됐다. 학교에 들어와서 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라는 소모임의 포스터를 보고 공개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소모임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내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들과 크게 일치했고, 그래서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다 지회 모임도 가게 됐는데 사실 지회 모임의 첫인상은 공상가들의 모임이었다. 자본주의를 뒤집고 사회주의를 꿈꾼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현실성이 결여된 얘기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싶었지만, 이런 주제로 토론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또 다 맞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현실 문제, 그리고 회사 생활에서 겪었던 모든 고민들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가 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사회주의가 이해된 직후에는 단체에 가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사회주의의 현실성에 대해 의심이 들어 망설여졌다. 가입해도 고민, 안 해도 고민이라면 가입하고 고민해보자는 심정으로 가입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 현실성에 의심이 들어 자꾸 개혁주의의 유혹에 빠진다.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소모임 토론을 할 때는 사회주의에 엄청 고무되었다가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의기소침해진다. 사회주의를 이해한 것으로 만족하고 여기서 멈춰야 하지 않을까, 혹은 사회주의 책 읽을 시간에 토익 책 한 권이라도 더 풀고 10점이라도 더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곳이 자본주의 사회고, 아직 내 생각에 확신이 들지 않아서 불안한 것이겠지만, 내 삶의 궤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겁이 난다.

 

나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못 하면 인생이 망하는 줄 알았고,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친한 친구가 성적이 떨어지면 진심으로 위로해주다가도 어느 순간 나보다 성적이 오르면 그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치열하게 대학에 입학하고, 그보다 더 치열하게 취업하는, 그렇게 경쟁이 당연한 세대 속에서 내 사상을 고취시키고 단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신문과 책을 읽고 현장에 나가 노동자들과 교류하며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속는 삶이 아닌 모두가 ‘잘(well)’ 사는 세상을 위해 다시 한 번 되뇐다.“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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